글번호
81839
작성일
2020.05.11
수정일
2020.05.11
작성자
kor201920
조회수
1466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주책바가지와 대포

우리말을 강의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다. 수업 중에는 주로 학생들과 토론하는데 의견이 분분하고 엉뚱한 답도 많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주책’이다. 주책이 있어야 좋은 것인지, 없어야 좋은 것인지 토론하면 엉뚱한 답이 많이 나온다. 싸가지(싹아지)도 마찬가지다. “싸가지가 있어야 좋은 것인지, 없어야 좋은 것인지?”를 놓고 토론하면 의견이 반반으로 갈린다. 한국어학과 학생 정도 되면 “싸가지는 있어야 좋은 것”이라고 답한다. 그것이 왜 그런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어원을 찾아 밝혀야 한다.

오늘은 ‘주책바가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주책이라는 말은 ‘주착(主着, 做着)’이 변해서 생긴 말이다. ‘주착(做着)은 잘못인 줄 알면서 저지른 과실, 주착(主着)은 1.'주책'의 비표준어, 2.주책(일정한 생각이 없이 되는 대로 하는 짓)’이라고 나타나 있다. 원래 주착(主着)의 의미는 ‘마음에 무엇을 두다’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주책없네.”라는 표현과 “참 주책이야.”라는 표현을 공히 쓰고 있다. 서로 반대되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렇다면 주책은 있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없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가? 결론 먼저 말하자면 “주책없다.”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저 친구 참 주책이야.”라고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말은 틀린 표현이다. “주책 떨고 있네.”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지만 역시 옳지 않다. 아마 주책(酒?)이라고 생각해서 ‘술을 마시고 헛소리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은데 옳지 않은 표현이다. 이제 주책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를 넘어서 완전히 한글화되었다. 초생달(初生달)이 ‘초승달’로 굳어진 것처럼 한글화된 단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주책바가지’라고 할까? 바가지는 ‘박아지’에서 유래한 단어다. 우물이나 항아리에서 물을 뜨는 도구를 ‘바가지’라고 한다. ‘박(匏) + 아지= 박아지> 바가지’가 되었다. ‘아지’는 작고 귀여운 것에 붙은 접사다.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등에 사용하는 ‘아지’와 같다. 그런데 왜 작고 귀여운 바가지가 주책바가지가 되었을까? 주책을 바가지에 담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 그 말이 맞다. 주책이라는 말로 굳어져서 ‘잘못한 줄 알면서 저지르는 실수’를 바가지에 가득 담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바가지를 긁다’라는 표현을 한다. 이는 ‘잔소리가 심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특히 ‘마누라의 바가지’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가지는 누구나 긁을 수 있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와 불평을 할 때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잔소리가 심하면 ‘바가지를 긁는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주로 아내와 남편 사이에 사용하는 용어로 어의가 축소되고 있다. 옛날에 전염병이 돌면 그 귀신을 쫓아내기 위하여 상 위에 바가지를 놓고 긁었다. 그 소리가 매우 시끄러워 전염병 귀신이 달아나기를 바라는 뜻이다. 그만큼 바가지 긁는 소리가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귀신이 달아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와 아내가 잔소리하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언어세계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대포집(대폿집이 표준어지만 당시에는 모두 대포집이라고 썼다.)도 많았다. 하교하는 길에 보면 길거리에 온통 대포집 천지였다. 집집마다 대포를 한 대 씩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물론 농담이지만 당시에는 대포의 뜻도 모르고 그냥 술집을 대포집, 혹은 왕대포집이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앞에서 한자로 쓴 것과 같이 대포(大匏)는 큰 바가지라는 뜻이다. ‘왕대포’는 대포보다 더 큰 바가지라는 뜻이다. 옆집보다 더 큰 바가지로 술을 퍼 준다는 뜻이다.(참기름>순참기름>진짜참기름>진짜순참기름…… 아이고!) 막걸리는 바가지로 떠 줘야 제 맛이다.

 

철이 없는 행동을 하거나 남 탓만 하는 사람을 주책바가지라고 표현한다. “그 사람 참 주책이야”라고 하는 말도 사실은 “그 사람 참 주책없는 사람이야.”라고 해야 한다. ‘주책이다’나 ‘주책 떨다’는 아직 표준어로 등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주책없는 사람’이 맞는 표현이니 바르게 써야겠다. 아울러 술집에 있는 대포는 큰 바가지임을 기억하자. 그러나 대폿집은 이미 고급 술(소주, 맥주, 양주?)집에 밀려 사어(死語)가 되었으니 희미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프레시안, 2020.05.0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0110345774827?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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