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86038
작성일
2020.06.09
수정일
2020.06.09
작성자
kor201920
조회수
327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숫자놀이(3과 12)

우리말에서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홀수(양을 상징하는 수)를 특히 좋아하고, 특별한 수를 꺼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병원에 가면 4층이 없고, 홀수가 겹치는 날은 항상 행사를 한다. 1월 1일은 설날, 3월 3일은 삼짇날, 5월 5일은 단오 등과 같이 홀수를 좋아한다.

 

예전에는 숫자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서 셋만 넘으면 많은 것으로 인정했다. 그것은 한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자로 많은 무리를 뜻하는 글자는 ‘중(衆)’이다. 하나(?)의 울타리(명(皿) 안에 세 사람(人人人) 이상 들어가 있으면 계수(計數)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그저 ‘많다’고 했기 때문에 무리 중(衆) 자가 되었다. 그래서 슬도 세 잔을 품배라고 하기도 하고, “술 석 잔이면 크게 취한다(酒三觴大醉).”고 하여 석 잔 술이 엄청 많이 마시는 것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3이라는 수는 우리의 행운의 숫자이기도 하다. 많이 하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세 번 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였다. 뭘 해도 삼 세 번을 해야 했고, 술도 석 잔을 마셔야 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끼를 먹고, 가위·바위·보를 해도 세 번 해서 결정지을 때가 많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계수 개념도 확장되어 숫자 9가 수의 극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한 동안 9가 숫자의 극을 상징해 왔는데, 0의 개념이 나오면서 그 이상의 숫자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변하는 중에 숫자의 극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긴 것이 12이라는 숫자다. 우리말에서 12이라는 숫자는 정말로 엄청 많은 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나는 하루에 너를 열두 번도 더 생각해.”라든가, “너는 그런 것을 열두 번도 더 하니?”라고 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를 연상하게 된다. 숫자의 극이 점차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백만장자가 엄청난 부자를 의미했지만, 요즘은 백만장자가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억대 부자라는 말이 나왔고, 이제는 억대 부자는 재벌에 들지도 못한다. 갈수록 커져가는 숫자 속에서 우리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국가 예산이 조를 넘어선 것이 꽤 오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12이라는 숫자가 큰 의미로 작용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 숫자가 오래 전부터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열둘이 숫자의 극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시간도 12시가 지나면 다시 1시가 되고, 연필도 한 다스 달라고 하면 12자루를 준다. 사실 한 다스의 개념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고 12을 선호하게 되었다. ‘다스’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물건 열두 개를 묶어서 세는 단위’라고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다른 뜻으로는 ‘12개, 타(打)로 순화’라고 나타나 있다. 그러니까 다스는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니 우리말로 ‘타(打)’로 바꾸어 부르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어 다스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하는 것을 먼저 살펴보아야겠다. ‘다스’는 ‘dozen'이 일본을 거쳐 오면서 변한 것이다. 즉 우리말 ‘타’는 일본어의 음만 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다즌’의 발음을 ‘다스’라고 했던 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넘어왔다. 12이라는 숫자는 십이진법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자의 십간십이지를 연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즉 12지는 열두 마리의 짐승으로 우리의 띠를 말한다. 천간과 합하여 육십갑자가 되고 환갑이라는 일생의 중요한 행사로 인정받기도 했다. 요즘이야 환갑잔치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우리 선친 대까지만 해도 큰 행사의 하나였다. 필자의 할아버지도 환갑 전에 돌아가셨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당사주법과 같은 열둘이 하나의 단위로 12진법을 형성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십이진법이 큰 줄 알았는데, 그 후 육십진법이 나와 숫자의 극을 올려놓았다. 60초는 1분, 60분은 1시간과 같은 것이 육십진법이다. 그러다가 다시 이진법의 시대로 돌아왔다. 컴퓨터는 이진법으로 움직인다. 바코드도 음양의 길고 짧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을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열둘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큰 숫자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일년 열두달, 24절기, 황도십이궁,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십이진법 등과 같이 우리의 삶에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다. 

 

가을도 아닌데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그리움에 젖어본다. 아직은 청춘인가 보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프레시안, 2020.06.05.,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0509063808884?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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